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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국 & 백승권 LA 강연회 후기 ( feat. 대통령의 글쓰기)LA 일상 2017. 11. 10. 09:31
글쓰기를 주제로 한 강의는 기대감을 가져서는 안된다.
수년간 들었던 지겨운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예상은 적중했고, 이번 강연회도 글쓰기에 대한 내용은 특별한 것이 없었다.
다만 이번 강연회에서 특별한 것은 연사들이다.
두 명의 연사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을 모셨다는 공통점이 있다.
백승권 전 청와대 국정홍보 행정관과 강원국 전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장.
이들은 대통령을 위한 글을 쓰는 사람들이었다.
우선, 백승권 전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은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청와대 행정관의 하루를 들려줬다.
청와대 행정관들은 매일 7시에 출근한다. 출근해서 청와대에서 아침을 챙겨먹는 것도 중요한 일과 중 하나이다. 청와대에서 밥을 먹었던 지인에 따르면 하루 세 끼가 굉장히 잘 나온다고 한다.
행정관들은 아침을 먹고 나면 신문을 보면서 그날의 이슈를 확인한다.
8시쯤 청와대 관저에서 비서실장과 홍보실장, 비서관 등 10여명이 모여서 30~40분 동안 회의를 진행한다.
주로 국정 아젠더와 이슈와 브리핑할 거리 등에 관해서 논의하는데 역할 분담도 이 때 이뤄진다.
행정관들은 오전 안에 각자 맡은 것에 대해 취재하고 원고를 작성 한다. 이들이 작성한 글은 경제정책 수석실이나 국토해양부 등에 보내지고 동시에 홍보수석 비서실장에게도 보내진다.
바쁜 오전을 보내고 나면 행복한 점심시간이다.
잠시 한숨 돌리고 나면 글에 대한 컨펌이 난다. 수정할 사항들이 쏟아지고 3시쯤 최종적으로 글이 완성된다.
이 글들은 주로 기자들에게 발표하고 기자들이 이를 토대로 기사를 작성한다.
이와같은 싸이클로 행정관들은 대통령의 생각과 말을 대신 전하는 역할을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졌다.
행정관들은 노 전 대통령의 연설문을 미리 준비하는 역할도 한다.
노 전 대통령이 이들이 준비한 것들을 대부분 잘 인용하지 않았다. 다른 대통령들은 대부분 연설문을 그대로 인용하는 경우가 많았는데(특히 군사 정부 시절) 노 전 대통령은 행정관들이 써준 연설문의 20~30% 밖에 인용하지 않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행정관들은 노 전 대통령이 연설을 할 때 마다 대통령의 입만 쳐다보게 되었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이 조금이라도 연설문을 인용해주면 만족스러운 것이다.
시행착오 끝에 노 전 대통령이 좋아하는 연설문 스타일도 알아냈다.
바로 키워드, 카피, 사례이다.
핵심 키워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좋은 문구는 카피하며, 사례를 들어가면서 듣는 사람들이 이해하기 쉬운 연설문을 선호했다.
그리고 그는 항상 글의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정확한 사실 관계를 전달해야 역사 속에서 의미가 있다고 늘 강조했다.
또한 노 전 대통령은 현장의 분위기를 중요시 여겼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청중들의 분위기를 살피고 그들이 원하는 이야기로 연설문을 즉석에서 바꾸는 선수였다는 것.
이날의 메인 연사는 강원국 전 노무현 대통령 연설비서관이었다. 앞서 백 연사가 30분 정도 강연했는데 강 연사는 한 시간 동안 강연한 것을 미루어 짐작한 것이다.
그는 지난 2000년부터 3년 동안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행정관, 2003년부터 5년 동안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관이었다. 두 명의 대통령을 동시에 모셨으니 공통점도 잘 알고 비교할 수도 있었다.
두 대통령의 공통점은 책을 좋아했다. 그들이 책을 많이 읽는 이유는 첫째 호기심이 많았고, 책을 읽은 뒤에 자기만의 생각을 만들 수 있어서다.
이들이 얼마나 책 읽기에 빠져 있었냐하면 다음과 같은 예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김 전 대통령은 책을 읽다가 자신만의 생각을 만들지 못하면 굉장히 불편해 했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책을 읽은 뒤 '뿌듯함'을 얻는 것과 분명한 차이가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책을 읽다가 좋은 생각이 나면 기뻐서 방안을 뛰어다녔다.
또 그는 독서과 학습을광적으로 좋아해서 리더십 비서관이라는 전에 없던 비서관을 곁에 두었다. 이 비서관의 역할은 대통령을 대신해서 하루에 한 권씩 책을 읽은 다음 요약해서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것이다.
물론 1년만에 이 비서관이 스스로 나자빠졌다는 후문도 있다.
강 전 비서관은 두 대통령 밑에서 성장했던 이야기도 들려줬다.
그는 김 전 대통령 밑에서는 경제연설 행정관으로 일했다.
경제, 외교, 안보, 통일 등 4명의 행정관이 있었는데 각자 자기가 맡은 분야의 연설문을 매일 써서 대통령에게 올렸다.
대통령이 이들을 글을 매일 채점했다니 경쟁이 붙을 수 밖에.
회사든 기관이든 조직에서 경쟁 구도가 형성되면 늘 긴장하게 되고 상대방이 좀 더 못하기를 속으로 바라게 된다.
그도 그랬다.
김 전 대통령이 행정관들의 연설문이 마음에 안들면 테이프에 자신의 육성을 녹음해서 그걸 듣고 고치도록 전달하기도 했는데 테이프를 받는 행정관은 눈앞이 캄캄했고, 다른 행정관들은 한시름 놨다는 것.
이 경쟁구도는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에 사라졌다.
그 동안 대통령이 비서실장에게 지시를 하고 비서실장은 수석에게 수석은 비서관에게 지시를 했다. 그러고 나면 비서관이 행정관들에게 지시를 전달하고 행정관들이 연설문을 시스템으로 돌아갔다.
이 틀을 노 전 대통령이 깨버린 것이다. 대통령이 행정관에게 바로 지시하는 것.
나도 회사를 다닐 때 지시 사항을 몇 단계 거쳐서 전달 받으면 지시 사항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았다.
중간에서 몇 가지 정보씩 빠진 채로 전달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이 새로운 방법을 도입하자 행정관들은 일할 맛이 났다고 했다.
사명감과 열정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
사기업에도 이런 시스템을 도입하면 일의 능률도 오르지 않을까.
강 전 비서관은 두 대통령을 통해서 성장했지만 청와대를 떠나고 나서야 진짜 행복을 찾았다.
청와대에서 늘 대통령의 입장에서 대통령처럼 생각하고 대통령처럼 글을 쓰면서 살았는데 청와대를 벗어나서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재미를 붙인 것 중 하나는 하루에 세 편씩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이다.
글이 100편이 넘어가면 아이템이 고갈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재미를 붙였고 아이템을 찾는 눈도 생겼다고 한다.
이렇게 자기 이야기를 쓰면서 그는 진정으로 자기를 위한 삶을 살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이렇게 블로그에 강연회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남기는 이유도 강연회에서 얻은 정보들을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어서다.
물론 내가 전하고 싶은 내용로 재구성 했지만, 나만 알기엔 아까운 강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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