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편>
“City of stars. Are you shining just for me? City of stars. There's so much that I can't see."
-별들의 도시여, 나를 위해 빛나고 있나요? 내가 볼 수 없는 게 너무 많아요.
꽉 막힌 회색 도로에서 날갯짓하는 군무. 좁은 셰어하우스를 밝히는 여배우들의 파란 노란 빨간색의 드레스. 쌉싸름한 초콜릿 같은 흑적색의 카페와 술집, 그리고 바다. 사랑과 꿈을 좇는 청춘들의 낭만은 오히려 갑갑한 현실에서 더욱 반짝였다. 그래서일까. 나는 한동안 영화 <라라랜드>에 푹 빠져 지냈다. 가끔은 그곳에 가는 꿈을 꿨다. LA행이 결정되던 밤, 보름달이 크고 밝았다.
지지난해 말 남자 친구가 갑자기 나에게 원서를 내밀었다. 미국에 있는 한인 언론사에서 5년 차 이상 경력 기자를 뽑는다는 것이었다. 그는 지원할까 말까 고민을 했다. 나는 속으로 '왜 고민하지? 나 같은 바로 쓰겠다'라고 생각했다. 아니 '고민을 못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남자 친구는 원서 마감날 아침까지 나에게 물어보고 지원했다.
내가 원서를 쓰고 싶었다. 당시 나는 경기도 수원과 충북 충주 등지에서 방송기자로 일하며 서울로 이직을 꿈꾸고 있었다. 평일에는 새벽부터 출근해 아침부터 저녁 뉴스까지 다 만들어야 했고 주말에는 다른 사람의 프로그램을 모니터해 방송 녹취를 글로 풀어 다시 인터넷판에 올려야 했다. 마감을 맞추느라 수원에서 청주로 장거리 연애하는 주말 버스 안과 남자친구 차 안에서 이어폰을 끼고 쓰곤 했다. 하지만 나는 안타깝게도 3년 차 기자였고 자격 요건이 안 됐다. 그래! 남자 친구를 보내서 나도 따라가자!
남자 친구는 결국 합격했다. 내가 원서를 쓰라고 했고 면접 연습을 해줬으니 일등 공신은 바로 나였다. 나는 신나서 그를 붙잡고 끽끽꺆꺆 웃었다. 방방 뛰었다. 보름달이 뜬 밤 수원 광교에 있는 근사한 바에 가서 비싼 와인을 마셨다. 남자 친구는 내 정수리에 손을 얹었고 나는 팽이처럼 빙빙 돌면서 춤췄다.
두 달만에 속전속결로 결혼을 했고 '남친'은 '남편'이 됐다. 그는 "먼 훗날 마주 잡은 두 손에 지문이 없어지는 그날까지 행복하게 살자"고 프러포즈했다.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녹을 정도로 행복하다. 결혼식장에서 신부가 너무 웃는다고 누가 뭐라고 했지만 나는 1도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주인공이니까.
남편은 신혼여행을 마치고 한 달도 지나지 않아 LA로 떠났다. 나도 5월 말 비자를 손에 쥐자마자 일주일 만에 비행기 티켓을 끊어 뒤따라 갔다. 부모님은 뭐 그리 급하냐며 고생하면서 쌓은 경력이 아깝지 않냐고 연말까지 한국에 있으라고 만류했다. 일부러 그러 건 아닌데... 나는 내가 듣고 싶은 것 위주로만 듣는 편이다. 헤헤
덥지만 습하지 않은 날씨, 친절한 사람들, 여유로운 시간, 해변의 서핑, 내가 그리던 라라랜드였다. 하지만 모든 것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남편은 내가 하루빨리 취업하길 바랐다. 내가 영어공부를 하면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는 것을 달갑지 않아하는 눈치였다. 남편의 재촉이 야속해 가끔 남편 팔뚝도 꽉 물었다.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에게는 걱정할까 봐 말을 하지 못했다.
원인은 비싼 월세 때문이었다. 이 놈은 마치 괴물처럼 살아 나의 발목을 잡고 따귀를 때리는 것 같았다. 라라랜드가 아니라 집값랜드였다. 이곳에선 원룸을 스튜디오라 하고 거실에 방 한 칸이 딸린 것을 원베드라고 한다. 남편은 스튜디오가 아닌 원베드로 집을 구했다. 나는 너무 작은 집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기 싫었다.
우리의 러브하우스는 LA 한인타운 동쪽, 비교적 안전한 곳에 있다. 아파트 중앙에 야자수가 있고 작은 수영장과 노천 온천이 있다. 크기는 589 스퀘어피트(약 16평)이다. 한 달 방값이 얼마일까. 상상해 보라. 무려 1985달러 한화로는 약 2백10만 원이다. 큰 사치를 부린 것도 아니었다. 최대한 안전한 곳, 저렴한 곳을 찾는다고 한 곳이었다. 괴물은 한 달 두 달 지나자 목을 조여왔다. 그 괴물보다 더 무서운 건 남편의 어두운 얼굴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나는 취업을 했다. 최대한 돈을 아껴 쓰고 줄이고 있다. 남편은 한국에서 술 값으로 한 달에 70만 원 정도 썼다는데 이제 한 달 용돈 50달러(6만 원)를 받는다. 우리 부부는 1억 모으기 프로젝트에 도전한다. 이게 바로 우리가 손에 잡을 수 있는 아메리칸드림이다. 계산기를 두드려 보니 매달 2500달러씩 3년을 모아야 한다. 방세 1896달러, 전기요금과 수도요금 31달러. 인터넷 49.99달러, 자동차 리스비와 보험료 330달러. 여기다 휴대전화 2명 요금 128달러 등등을 더하면 고정 지출만 매달 2545달러다. 남편이 한 달에 받는 돈은 연방세와 주세, 국가 보험료 등 17%의 세금을 떼면 3500달러 정도다. 사실 버거운 일이다. 하지만 청춘은 위기 때 빛나는 법이다. 결과는 숙연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라라랜드의 엠마 스톤은 그랬으니까.
나는 LA에 도착하자 마자 남편과 산타모니카 비치에 왔다.
글쓴이 : 우세린(아내, 한인가정삼당소 가정폭력 생존자 재정 지원 담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