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선배, 선배, 선배 차 보셨어요? 어떡해"
결승선 끊듯 출근 시간에 맞춰 도착한 편집국. 좀처럼 나를 찾을 일 없는 한국계 캐나다인 후배가 내 차의 안부를 물었다. 장가가려고 산 새 차를 한국에서 'X값'에 팔고 미국으로 온 나는, 차체의 작은 긁힘에 흥분하는 그런 종류의 사람은 아니었다. 어디 문쪽에 조금 긁혔겠지.
낯설었다. 내 차를 보고도 누구 것인가 했다. 처음 서울로 유학을 가 모처럼만에 고향 울산에서 엄마를 본 느낌이랄까. 왼쪽 전조등이 깨져 플라스틱 파편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보닛을 열어보니 2센티미터 정도가 엔진룸 쪽으로 움푹 들어가 있었다. 그때만 해도 이른바 야매 업소에 가면 200~300달러(30~40만 원)만 내면 고칠 수 있겠지 싶었다. 한인 공업사(바디샵)를 찾아갔다. 견적, 1000달러(110만 원). 이민 애송이라고 사람들이 나를 속이는 건가. 다른 가게를 찾아갔다. 1100달러. 또 다른 곳은 1050달러였다. 그제야 머리통이 뜨거워졌다.
겉보기에는 전조등만 깨진 줄 알았다. 하지만 자체가 움푹 들어간 조금 심각한 상태였다.
오늘 밤 주인공은 나야 나 나야 나
(TV 프로그램 프로듀서 101 주제가)
나는 사건기자 출신이다. 충북 청주에서 햇수로 7년 동안 사람이 벌일 만한 종류의 범죄는 대부분 취재했다. 존속살인, 성폭행 살해, 유아 살해, 시신 유기, 방화, 시간(屍姦) 등 도시의 골목을 사건 리포트로 기억한다. 어떤 곳은 흩뿌려진 피의 흔적도 선하다. 뺑소니범, 넌 내가 잡는다!
사건 발생 시간은 회사 경비원이 퇴근한 오후 11시부터 다음날 아침 8시 사이다. 주변 차량 블랙박스를 찾았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블랙박스가 설치된 차량이 한국처럼 흔하지 않다. 절도범이 전자장비를 노리고 유리창을 부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잠시 차를 주차할 때도 항상 가방은 절도범의 눈에 안 띄는 트렁크에 놓고 내려야 한다. 또 의외로 미 서부, 내가 사는 LA는 신문물에 민감하지 않다. 내 차 주변 차량에도 블랙박스가 없었다.
건물 CCTV는 있을까.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회사 뒷문 비가림막 같은 곳에 흰색 블랙박스가 담벼락 위 고양이처럼 내 차를 빼꼼 내다보고 있었다. 영상은 모두 회사 경영실에서 녹화하고 있었다. 증거는 확보됐다. 용의자를 찾자.
범인은 신문배달 트럭 중 하나였다. 어느 신문사 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운전기사가 차에 탄 채 신문 3개를 문 앞에 던지고는 후진해 내 차를 충격하고 도주했다. 회사 직원에게 물어 그 시간대에 신문을 배달하는 회사를 추렸다. 전화를 했고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사고 차량 운전기사가 잘못을 시인했다. 한국의 경우 뺑소니로 죄를 묻기 위해서는 가해자의 고의성이 증명돼야 한다. 빠져나갈 구멍이 크다는 말이다. 미국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사고 발생을 인지하고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을 뺑소니(Hit and Run)로 기소될 수 있다. 중범죄다.
다 해결된 줄 알았지만 골치는 그때부터 더 아팠다. 가해자가 자기가 아는 공업사(바디샵)에 가서 차를 수리하자고 한 것이다. 당연히 거절했다. 그러자 몇 시간 뒤 회사 간부가 전화를 걸어왔다. 잘 아는 사람이라며 '좋은 쪽'으로 처리해 달라고 부탁했다. 원칙대로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슬쩍 떠 봤다. 그러니 엿가락처럼 늘어지며 가해자를 잘 봐달라고 말했다. 좋은 쪽? 아니겠지. 너님이 원하는 쪽이겠지.
아니, 아까도 말했었잖아요. 잘 좀 들어보세요
보험사 직원에게 전화를 했다. 그런데 답변이 퉁명스러웠다. 큰 사고가 아니면 상대방 보험사로 사고 처리를 하라고 했다. 가해자 말을 따르라는 것인가. 다른 방법이 없냐고 물었다. 보험사 직원은 "그러면 선생님 돈으로 먼저 수리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며 "조사 결과에 따라 돈 일부를 못 받을 수도 있다"고 했다. 말 중간중간에 미국 사회를 잘 모른다며 짜증 섞인 투로 말을 했다. 심지어 렌터카를 하면 추가 요금을 낼 수 있다며 성가셔했다.
내가 계약한 A 보험사는 미국 굴지의 대형 보험사였다. 나는 매달 258달러의 보험 요금을 내고 있었다. 아내가 운전면허를 따고서야 사고 위험이 낮아졌다며 약 230달러를 냈다. 그런데 지난해 6월 미 경제지 기사를 읽어 봤다. 기사에는 A 보험사가 미국 최악의 자동차 보험회사 4위로 기록돼 있었다. 컨슈머리포트가 6만 4000명 독자에게 만족도 조사를 한 결과였다.
수리를 끝냈고 한 달만에 수리비 전액을 돌려받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보험사를 바꾸자. 미국 자동차 보험은 회사와 상품이 많은 데다가 운전자의 학력 직업 등 백그라운드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먼저 도시나 동네마다 보험료 차가 크다. 자동차 보험료 비교 사이트 더 지브라(The Zebra)는 최근 자동차 보험료를 조사해 발표했다. 2017년 기준 디트로이트가 1년에 5414달러로 가장 비쌌다. 10번째로 비싼 라스베이거스는 일 년에 2462달러였다. 차량 종류에 따라서도 보험료 차가 난다. 일본차가 비교적 저렴하고 비엠더블유와 벤츠 등 독일차가 비싸다. 예전에 자동차 중계인은 유럽차의 경우 부품이 더 비싸 보험료도 높다고 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교통사고도 많아 지난해 한 해 평균 보험료가 1713달러로 6년 전 1190달러에 비해 43.9% 나 올랐다.
인종차별 논란도 있다. 샌프란시스코 소비자연합(CU)은 운전기록에 상관없이 흑인이나 라티노가 백인에 비해 보험료를 더 내고 있다고 2017년 발표했다. 인종별 거주 밀집지역의 보험료를 추정했는데 라티노 밀집 지역이 백인 지역보다 보험료가 13% 더 많았다. 흑인은 60%나 많았다. 소비자보호단체 컨슈머리포트도 캘리포니아와 일리노이, 텍사스 등 인종 거주지별로 보험료 차별이 크다고 비판했다
왼쪽은 A 보험사의 한 달 자동차 보험료. 오른쪽은 M 보험사의 한 달 보험료다.
나는 그때부터 보는 사람마다 보험 회사는 어디인지 보험료가 얼마인지 물었다. 차량 주행 거리가 짧으면 보험회사 가이코(GEICO)의 상품이 싸다고 해 견적을 내봤지만 나의 경우는 더 비쌌다. 아메리칸 인슈어런스, 스테이트 팜 등에도 문의했지만 엇비슷했다. 그러다 회사 선배의 추천으로 M 보험사에 문의했다. 한인 직원도 여러질문에 늘 친절히 답해줬다. 보험금은 더 착했다. 상해 최대 10만 달러, 차량 데미지 최대 5만 달러 상품이 한 달에 170달러. 무려 89달러(10만 원)나 줄었다. 일 년으로 따질 경우 1068달러(110만 원) 절감 효과였다. 밑 빠진 독에 큰 구멍 하나를 메웠다.
내가 타고 있는 자동차는 2016년 형 폭스바겐 제타로 3년짜리 리스를 했다. 6000달러(700만 원)를 선금으로 내고 3년 동안 매달 165달러를 지불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신용도라 불리는 크레딧을 쌓아야 리스를 할 수 있다. 하지만 폭스바겐은 2015년 배기가스 조작 사건 등으로 리콜을 하는 등 이미지가 깎였던 터라 미국 신용 등급(크레딧)이 없는 나에게 리스를 해줬다. 하지만 누가 또 이민을 온다면 하면 나는 중고차를 일시불로 사라고 권하고 싶다. 미국에서는 최대한 매달 나가는 고정 비용을 줄여야 한다. 없어야 산다.
*참고로 이 글을 읽고 지인이 다른 보험 상품을 추천했다. 나와 같이 M사의 보험을 쓰고 있는데 최근 마일 당 보험료를 계산하는 메트로마일(Metromile)로 갈아 탔다는 것이다. 보험료는 매달 156달러를 내다가 이제 67달러를 낸다고 한다. 그는 한 달 500마일 이하를 주행하는 운전자에게 이 회사를 추천했다. 주행 거리가 많은 운전자에게는 오히려 비쌀 수도 있다고 한다. 웹사이트에 가면 무료로 견적을 낼 수 있다. 또 다른 의견이 있는 독자가 있으시면 댓글을 달아주시길. ^^